우리에게 낙원이 필요한 이유
글_하윤주
신명준 작가는 동시대 청년 작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청년, 그리고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현재 이들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을 통해 그 현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10년 전 #88만원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후 그 세대조차도 부럽다는 #삼포세대를 지나 #N포세대, 무한대의 경쟁으로 인해 ‘번 아웃’되었다는 #탈진세대, #무민(無Mean)세대...
이 시대 청년을 부르는 수많은 이름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유의미한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는 현재적 강박이 그들에게 어떤 것인가를 반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청년작가가 마주한 현실이 잔혹동화라면,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유난히 빠르게 돌아가는 속도와는 결이 다른 속도의 심장을 가진 이라면, 그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승자독식, 무한경쟁 시대에 자신을 찾고 지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 작가의 내면 풍경이 < 낙원의 형태 >라는 이름으로 오늘 유리상자 안에 펼쳐졌다. 그의 내면이 처음부터 낙원이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이를 이해하기 위해 낙원 이전의 흔적을 살피고, 그의 파라다이스에 이르러 보자.
Ⅰ. 쉬어가도 좋지 않을까?
< Never Ending Holiday >(2016)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에서 ‘떠나라’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앞의 ‘열심히 일한 당신’이라는 말이 전제되어야 한다. 휴가가 달콤한 시간일 수 있는 이유는 매일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일 지라도 그런 하루하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대 청년에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반복되는 불안한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매일매일을 그냥 휴가라 여기기로 한다. 휴가에는 설렘, 재미, 휴식과 같은 정서가 함께 따라오기 때문에, 휴가라는 이름만으로 왠지 어제와는 다른 내일이 되었다. 그래서 (2016)에는 ‘매일이 휴가라는 선언’과 불안을 뒤로하고 설레는 휴가를 즐기면서 편안하게 쉬고 싶은 20대 청년의 바람이 담겼다.
Ⅱ. ‘산’ 혹은 ‘별’이 된다면 조금 덜 흔들리려나?
< If I Were a Mountain >(2017), < Planet Planning >(2017)
작가는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매일이 낯선 설렘이기를,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기를 바랬던 작가는 이제 바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기로 한다.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견고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즉 산은 그 안에 수많은 사물을 품어 왁자지껄 하지만 자체로 묵직하다. 행성 역시 표면 위는 아기자기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겁다.
신명준 작가는 스스로 산이 되고, 별이 되어 더 이상 세상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Ⅲ. 전지적 제작 시점 – 낙원으로의 초대
< 낙원행 >(2018), < 낙원의 형태 >(2019)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산이 되고, 별이 되었던 작가는 이제 하늘을 날아서 자신만의 장소로 향한다. 그곳은 자신만의 파라다이스, 일명 낙원이다. 힘을 가진 존재에서 자신이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스스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예로부터 인류는 수많은 낙원을 꿈꿔왔다. 대개 이곳은 하늘 위나 바다 밑의 어떤 곳, 혹은 산 속 계곡 너머 깊숙이 자리 해서 인간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였다. 그 곳은 항상 깨끗한 물이 흘러넘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이 있고 동물들이 평화롭게 뛰노는 등 고통이 없고 평화로운 장소로 상정된다. 신명준 작가는 유리상자 안에 자신만의 안식처를 만들지만, 이곳은 분명 인류가 상상해 온 낙원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낙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발 딛고 선 도시의 어느 한 켠인 듯, 지금이라도 길거리 공사현장에 나가면 볼 수 있을 법한 사물들이 우리를 맞는다. 그래서 한편으론 친근하지만, 기존의 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아 약간은 당황스럽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작품을 구성하는 오브제들의 면면이다. 이제까지의 작업에서 신명준 작가는 주로 영상, 사진, 그리고 각종 다양한 오브제들을 다루어 왔다. 특히 재치 있고 솜씨 좋은 조합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볼 때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어디에도 없는 오브제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 낙원의 형태 >를 구성하는 오브제들은 예전과 같은 조합이나 변형이 가해지지 않은 날 것에 가깝다. 분명 < 낙원 >의 오브제에는 담백함과 절제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만든 유리상자 안의 낙원은 무엇을 말하기 위한 것일까.
아마도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면서 이상화하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담는데 충실한 것 같다.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었지만, 현실이 힘들다고 가상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낙원은 지금 여기, 지속가능한 일상을 지키는 것에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신명준 작가는 자신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힘에 맞서 자신의 싸움을 하고 있다. 때로는 매일 휴가를 가면서 그 때마다 새롭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기로 한다. 또 하루는 외부에서 오는 어떤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산 혹은 별이 되기로 한다. 작가는 이런 긍정의 힘을 위안 삼아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노라 말한다. 자신의 심장 박동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서 고유한 박자를 지키는 일, 누가 이를 무의미하다 할 것인가. 이 역시 동시대를 의연히 거스르는 작가의 태도일 터, 낙원은 이 태도가 만든 그만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낙원을 만들고 보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낙원을 만들어 보기를 그리고 그 곳에서 잠시 쉬어가길 권한다. 혹 이것이 우리에게 낙원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