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이야기로부터 비롯된 풍경
글_김성우 (프렉티스 프라이머리 디렉터)
샤를 보들레르는 산책자(Flâneur)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완벽한 플라뇌르, 열정적 구경꾼은 인파의 한가운데에, 움직임의 썰물과 밀물 속에, 일시적인 것과 무한한 것에 둘러싸인 곳에 머물며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산책자는 근대가 창조한 환경과 공간, 특히 도시 구조에서 발생하는 생활방식과 경험 구조를 비판하기 제안된 용어이다. 거리의 군중의 일원인 동시에 그들로부터 거리를 둔 존재이며, 이론과 환상이 아닌, 직관적인 시각으로 경험하고, 관조하는 태도를 지닌 사색하는 존재이다.
신명준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말없이 존재하는 여러 사물에 귀를 기울인다. 더 정확히는 삶의 한켠을 점유한 사물을 의식하고, 일상이라는 풍경으로부터 낯선 감각을 찾아낸다. 이러한 감각은 종종 사물들이 지닌 위상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가 선택하는 사물들의 성질은 대체로 효용가치를 잃어버린 채 일상생활의 속도로부터 튕겨 나간 채 우두커니 멈춰선 사물이거나, 삶의 반경 내에서 우발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의미를 파악할 수 없거나, 파악할 이유가 없는 대상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수집하고 재배열하여 모종의 상황을 이끌어내는데, 마치 사물의 전치를 통한 낯설게 하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런 면에서 신명준은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더 정확히는 이야기가 발생할 상황이자 무대를 가설하는 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도 같다. 그가 만들어낸 무대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 기능과 효용의 논리로 관객을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덧붙여지거나, 알 수 없는 문법에 따라 배치됨으로 더 적극적으로 기능을 떠나려 한다. 이를 보는 관객에게 주어진 미션은 일상의 형식들이 다양한 형태로 재구축되는 방식과 어떠한 서사와 연동, 접속이 가능할지와 같은 모종의 가능성이다. 이를테면, 신명준은 < 낙원의 형태 >(2019)에서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재료나 이전에 작업을 위해 사용했던 부분, 그리고 삶과 생활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다시 재가공하여 오늘의 무대로 끌어올리고, 비루한 일상의 사물들로부터 도달한 적 없던 낙원을 꿈꾼다. 이러한 방식은 < 사물들의 낯선 얼굴들을 위한 공간 >(2021)과 같이 표정 없는 사물들에 모종의 인상을 부여하기 위한 임시 공간을 가설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 돌을 찾아서 >(2020)에서는 길가에서 주워온 유리 덩어리를 의인화하여 인터뷰함으로 일상에 사변적 서사를 덧대고 일상과 예술이 교차하는 순간을 탐구한다.
신명준의 작업에서 원래의 기능이 기화된 사물은 언어를 떠난 시어와도 같다. 하지만, 언어를 떠남으로 사물은 자유로움을 획득하고, 이로부터 우리는 상상할 수 없던 사물의 자유로운 몸짓과 표정, 목소리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텍스트를 지배하는 논리는 환유이며, 연상과 인접, 이월의 과정은 상징적 에너지 분출로 충만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작업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은 그가 선택한 이름 없는 사물의 연결과 연상, 그 환유의 논리 아래 가능해진다. 그리고 끝없는 환유의 순환 아래 의미의 확장과 서사의 발견은 끊임없이 갱신된다.